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타이 콥 (문단 편집) == [[베이브 루스]]와의 관계 == || [[파일:external/cdn-jpg.si.com/ty-cobb-babe-ruth.jpg|width=600]] || || [[베이브 루스]]와 함께.[* 자세히 보면 키가 188cm나 되는 투수 출신 베이브 루스에 비해도 키가 별로 작지 않다. 얼굴 사진만 보면 별로 안 커 보이는 영국계 미국인 타이 콥의 키는 185cm(6피트 1인치)였다. 170cm대 선수가 많았던 당시로서는 타자로서 매우 큰 체구로, 지금으로 치면 190cm대 타자에 해당한다. 그리고 자세히 살펴보아야 할 것이, 이 사진을 통해 라이브볼과 데드볼 시대의 타격법의 차이를 알 수 있다. 루스는 배트 끝을 손을 붙힌 채로 잡고 있지만, 콥은 두 손을 띄어놓은 채로 컨택에 집중한 타격법을 가지고 있다] || 타이 콥은 야구를 전쟁과 같은 것으로 봤고 승리에 대한 갈망, 자기 능력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선수였다. 특히 이후 등장한 베이브 루스란 존재는 그의 야구 철학을 정면에서 부딪쳐오는 유형의 선수였다. 콥은 루스 식의 '한방 야구'보다 안타를 치고나가 빠른 발과 뛰어난 판단력으로 베이스패스를 지배하는 야구, 즉 타율과 도루 및 심리전을 포함한 작전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야구야말로 진정한 야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이 타격왕과 도루왕을 엄청 많이 한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사실 야구가 처음 정립될 당시를 기준으로 본다면 틀린 말도 아니다. 그 시점엔 펜스를 넘어가는 홈런은 그야말로 예외적 상황에 불과했으니. 실제 당시 미국 야구인들과 야구팬들도 슈퍼스타 홈런왕 베이브 루스에게 환호하면서도, 최고의 야구에 대한 생각에 있어서는 평균적으로 타이 콥의 그것과 아직 비슷했다. 야구에 대한 사상혁신은 2차대전 이후 40여년간 데드볼 시대를 넘는 라이브볼 시대 역사가 쌓이고 새로운 스타들이 나오면서 조금씩 끊임없이 변화하며 일어났던 것이다.] 하지만 대중들은 루스의 시원한 홈런포에 열광했고, 그런 대중들의 반응에 콥은 굉장히 분노했다고 한다. 그래서 툭하면 루스를 '반검둥이'[* 타이 콥이 특별히 인종차별주의자라서 그랬다기보단 당시 미국 사회에선(특히 마초적 성향이 더 강한 메이저리그 내에선) 일상적인 욕이었다. 언론 매체에서조차 흑인 멸칭을 자연스레 쓰던 시절이었다.]라고 놀렸고, 베이브 루스가 50홈런을 칠 때도 타이 콥은 4할도 못 치면서 잘난 척한다며 루스의 플레이를 별 거 아니라는 투로 깎아내리곤 했다.[* 생각보다 예민한 성격을 지녔던 루스는 그때마다 큰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 물론 루스 역시 자기가 단타를 노린다면 6할은 칠 수 있을 거라는 둥 설전을 펼쳤다.] 하지만 둘은 은퇴 이후엔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 콥은 데뷔 초기부터 연이 있던 스포츠 작가 그랜틀랜드 라이스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야구를 하면서 본 최고의 타자가 누구냐는 질문에 주저없이 베이브 루스의 이름을 꺼냈다. 루스의 힘과 선구안의 조합은 누구도 가지지 못했다고. 또한 더 나이가 들어 뉴욕 타임스와의 특별대담에서 "다시 감독이 되어 당신이 아는 모든 선수를 다 쓸 수 있다면 외야수로 누굴 고르겠냐"고 묻자, "좌익수는 조 잭슨, 중견수는 트리스 스피커, 우익수는 베이브 루스를 쓰겠다."라고 답했다.[* 1루수로는 [[루 게릭]], 2루수 [[에디 콜린스]], 3루수는 [[벅 위버]], 유격수는 [[호너스 와그너]]를 골랐다. ] 대타자가 대타자를 알아보는 눈은 속일 수 없나보다. 여담으로 루스의 등장과 더불어 '[[라이브볼 시대]]'가 열리면서 시원한 홈런을 때리는 강타자들이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시기에 콥은 30대 중반을 넘긴 노장이였고(단순히 노장으로 끝이 아니라 감독 겸 선수였다) 타격폼을 수정하기엔 너무 늦어버렸다. 그러던 어느날 경기에 앞서 한 기자가 콥에게 루스에 대한 칭찬을 하자 열이 받은 콥은 그날 경기에서 홈런을 3개 때렸고 그 다음날 경기에서 다시 2개의 공을 담장 너머로 날려버렸다. 사실 그 타격폼으로도 라이브볼 시대인 1922년에 4할을 친 게 타이 콥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